일본 근대화와 기독교/ 요코하마
요코하마는 일본 개신교회선교사의 첫정착지로서 선교의 꽃을 피운 곳이다. 한국최초의 개신교선교사였던 언더우드나 아펜젤러가 모두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서 왔다.
1854년 미일화친조약후 미국인들이 일본에 주재하게 되고 개신교 선교사들이 요코하마를 통해 일본에 들어왔다. 1859미국 북장로교회소속 의료선교사 헵번을 비롯한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아직 선교의 자유가 없었지만 헵번은 일본에도 선교의 문이 열릴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기도와 찬송으로 나날을 보냈다. 헵번은 의료사업과 교육사업(그의 아내가 만든 헵번숙은 지금의 메이지대학) 성서번역사업에 힘을 기울이면서 동료선교사인 바라선교사를 도우면서 요코하마에 작은 집회를 시작하였다. 신앙의 자유가 금지된 상태였지만 9명의 일본청년들이 세례를 받으며 출발한 교회가 요코하마최초의 개신교회 카이간교회이다.
1873년 드디어 신앙의 자유가 선포되고 요코하마교회는 더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헵번의 숙소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나 한국으로 가기위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그의 조언과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고. 한국성서번역위원회조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바라선교사와 성령운동
1872년에 일본인9명에게 세례를 주었던 바라 선교사는 1861년 요코하마에 아내와 도착했다. 그가 요코하마를 향해갈때 큰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어갔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가 만난 모든 일본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였다. 그의 기도로 세례를 받은 최초의 교인인 오시가와는 동북지방의 중심지 센다이로 가서 미션학원인 도후쿠학원원장이 되었다.
일본교회와 신학교육에 생을 보낸 우에무라도 그의 기도로 변화된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처럼 훌륭한 청년들이 바라선교사 주위에 머물게 된 이유는 그의 기도의 능력이었다.
바라는 고등학교졸업후 잡화상에서 일을 하다가 집주인의 딸이 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을때 창고에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체험을 한 후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29세때 일본선교사로 오게되었다.
요코하마의 그가 만든 바라숙에서 영어와 서양학문, 성경을 배우는 학생들 중심으로 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다. 1872년 바라숙 교실 한칸을 빌려서 기도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모인 청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뜨거운 신앙이 계속되자 40-5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중 9명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일생 주님과 동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종교금지시기였기에 그들은 담대한 믿음과 굳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바라숙에는 신앙을 갖기 위해 모인 청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보내진 기오미스라는 승려는 감시를 위해 이모임에 참석했다가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깨달아 승복을 벗고 요코하마카이간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바라숙과 우에무라
일본이 외세에 밀려 문호를 개방하고 요코하마를 통해서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의 붕괴로 일본에도를 중심으로 했던 많은 무사와 다이묘 자녀들이 권력을 빼앗기자 원망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때마침 요코하마에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학교에 입학을 하여 학문을 터득하게 되었다. 바라숙은 일본 젊은 청년들에게 이상과 꿈을 심어주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일본교회는 세가지로 구별할 수 있는데 첫째로 개인적신앙을 형성하여 무교회주의자들의 모임이 된 삿뽀로 밴드, 국가적신앙을 형성하여 일본 조합교회의 그룹이 되었던 구마모도밴드, 세번째로 교회적인 신앙을 형성하여 일본장로교회의 그룹이 되었던 요코하마밴드이다. 요코하마밴드의 인물을 배양했던 곳이 바라숙이고 바라선교사의 지도를 받았던 청년들은 거의 개종하게 되었고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우에무라이다.
우에무라는 1858년 부농의 아들로 도쿠가와 막부정권의 막대한 실력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11세에 메이지유신이 일어나면서 막부정권이 붕괴하자 그 가문도 몰락하게 되었다. 그는 부모를 안심시키고 출세하여 가문을 다시 일어키고자 하는 생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요코하마에 오게 되었고 이때 바라가 세운 바라숙에 입학을 하였다.
그는 무사의 가문으로 신도를 섬겼기에 바라숙에서 그것이 미신이라는 가르침을 받자 선교사와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우에무라는 선교사가 말한 오직 한 분 하나님(Only
One God) 에 깊은 감명을 받아 스스로 군신을 섬기는 일을 우상으로 단념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이로 그는 귀족신분에서 평민의 신분이 되었기에 얼마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하나님을 믿기로 하고 평민의 신분을 택했다.
그는 바라선교사로 세례문답을 받고 일생동안 일본교회와 일본 신학교육에 몸을 바치게